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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일요일예능선을 넘는 녀석들 _ 20.10.18 대한민국만세 _근황, 청산리 독립전쟁 100주년 특집- 전사의 후예 편

by 어무이머머 2020.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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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넘는 녀석들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매주 일요일 밤 9시 10분에 MBC에서 방영중인 역사예능 "선을 넘는 녀석들_리턴즈"를 즐겨본다.

역사라는 어려울듯한 주제를 설민석 선생님의 입담과 예능인들의 재치로 쉽게 풀어주는것 같다.

 

설민석 선생님의 강의를 몇번 들어봤는데 집중시키는 능력은 단언코 최고였다.

지루할법한 한국사를 재미와 감동을 주면서 잊지않게 스토리를 풀어준다.

 

2020.10.18 일요일 _ 선을 넘는 녀석들 
-청산리 독립전쟁 100주년 특집 -전사의 후예편

청산리 독립전쟁은 역사상 가장 빛나는 대승을 거둔 전쟁이라고 한다.

100년전 독립군을 이끌던 김좌진 장군님의 이야기가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김좌진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며, 1920년 10월 청산리 계곡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여 승리했다.

1889년 충청남도 홍성(洪城)에서 출생하였다. 부친은 김형규(金衡奎)이며 둘째 아들이다.
집안은 부유한 명문대가 였으며 15세 때 가노(家奴)를 해방할 정도로 진취적 개화사상이 강하였다.
1905년(광무 9) 서울에 올라와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하였으며, 을사늑약 체결 이후 국권회복의 신념을 가지고 애국지사들과 교류하며 국운을 바로잡을 것을 결심하였다.
1907년(융희 1) 고향으로 돌아와서 가산(家産)을 정리하여 호명학교(湖明學校)를 세우고, 대한협회 홍성지부를 조직하는 등 애국계몽운동을 하였다.
다시 서울로 올라와 기호흥학회(畿湖興學會)에 참여하면서 1909년 《한성신보》의 간부를 지냈고, 안창호(安昌浩) 등과 함께 서북학회(西北學會)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서북학회의 산하교육기관인 오성학교(五星學校) 교감을 역임하였으며 청년학우회 설립에도 참여하였다.

1911년 군자금 모금 혐의로 일본경찰에 체포·투옥되어 2년 6개월 간 복역하였다.
1915년 비밀결사 조직 대한광복회에 가입했고, 1916년에는 노백린(盧伯麟)·신현대(申鉉大) 등과 함께 광복단에서도 활동하였다. 
1917년 대한광복회의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었으나, 예심에서 면소판정으로 석방되었다.
1918년 만주로 망명하여 대종교(大倧敎)에 입교하였으며, 대한광복회 조직이 와해되면서 체포 위기에 처했으나 만주에 있어 체포는 면했다.
그 해 12월 무오(戊午)독립선언서에 민족지도자 39명 중의 한 사람으로 서명하였다.

19년 대한정의단의 기반 위에 군정부를 조직하여 본거지를 왕칭현[汪淸縣]에 두고 5분단(分團) 70여 개의 지회를 설치한 뒤 광복운동을 위한 기반을 조성하였다.
이를 대한민국임시정부 휘하의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로 개편한 뒤, 그 기관의 총사령관이 되어 1,600명 규모의 독립군을 훈련시켰다.

이어 사관연성소(士官練成所)를 설치하여 사관훈련과 무기입수에도 힘썼다.
기관총 7문 등으로 무장한 김좌진 휘하의 독립정예군은 만주 일대에서는 가장 막강한 실력의 군대로, 1920년 이후 10여 년 간 본격적인 항일전투를 전개하였다.
1920년 10월 20~23일 청산리(靑山里) 80리계곡에서 유인되어 들어온 일본군을 맞아, 나중소(羅仲昭:참모총장)·박영희(朴英熙:부관)·이범석(李範奭:연성대장) 등과 함께 백운평(白雲坪)·천수평(泉水坪)·마록구(馬鹿溝) 등지에서 일본군과 3회의 격전을 전개, 일본군 3,300명을 일시에 섬멸하였다.
이를 청산리전투라 하여 봉오동전투와 함께 독립전쟁사상 최대의 승리로 꼽는다.

그 후 부대를 이동, 헤이룽강[黑龍江] 부근으로 전진하여 국민회군의 안무(安武), 도독부군의 최진동(崔振東) 등과 연합하고 대한독립군단을 결성, 부총재에 취임하였다.
일본군의 격렬한 보복작전의 전개로 1921년 러시아령 자유시(自由市)로 이동하다가 이듬해 헤이허[黑河]사변으로 타격을 받고 다시 만주로 돌아왔다.

1925년 신민부를 창설하여 군사부위원장 겸 총사령관으로 있으면서 성동사관학교(城東士官學校)를 설립, 부교장으로 독립군간부 양성에도 주력하였다.
1927년 만주의 신민부·참의부·정의부의 3부를 통합하려다 실패하자 민족유일당 재만책진회(在滿策進會)를 조직하고 중앙집행위원장에 취임, 단일단결성을 재촉하였다.
1929년 한족연합회를 결성, 주석에 취임하여 황무지개간, 문화계몽사업, 독립정신 고취와 단결을 호소하였다.

1930년 1월 24일 중동철도선 산시역(山市驛) 부근 정미소에서 고려공산청년회 김봉환(金鳳煥)의 감언이설에 빠진 박상실(朴尙實)의 흉탄에 맞아 순국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김좌진 [金佐鎭] (두산백과)


자세한 설명은 두산백과를 인용했다.

김좌진 장군하면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들어본것 같은데 정확한 것을 몰라 설명하기 어려워 인용글을 올린다.

 

 

선을 넘는 녀석들 _ 출연 게스트

대한 민국 만세 _ 송일국


이날 방송에는 게스트로 송일국이 나온다.

예전 슈퍼맨이돌아왔다(?) 라는 예능에서 '대한,민국,만세' 세쌍둥이의 아빠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민국이 너무 귀여웠는데..

세쌍둥이의 근황도 이날 방송에서 알수 있다고 한다.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_ 송일국 _ 대한민국만세

 

 

송일국하면 가장먼저 '주몽'이라는 드라마가 생각난다.

그래서인지 사극이 어울리는 배우로 내 기억에 남아있다.

왜 게스트가 송일국일까를 알아보니 외증조부가 김좌진 장군이고, 외조부가 김두한이였네..

오..장군의 피가흐르는 집이였네.

예고편에는 " 장군의 후손에게 듣는 김좌진 장군의 숨겨진 이야기!" 라며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선을 넘는 녀석들 _ 님의 침묵
한용운의 생가 방문_ 버럭 한용운

 

또, <님의 침묵>을 지은 시인 한용운의 생가도 방문한다고 한다.

김좌진 장군은 칼로 일제에 맞섰다면 한용운 시인은 펜으로 독립운동을 했다.

님의 침묵이라는 제목은 한번은 들었을 것이다.

첫구절이 예능과 코믹에서 많이 쓰여서 익숙하다.

님의 침묵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글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 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만해 한용운 시인의 생전 이야기와 독립정신을 함께 들을수 있는 시간이 될것이라고 생각된다.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청산리 독립전쟁 특집 전사의 후예편은 김좌진 장군과 한용운 시인의 이야기가 될것이다.

그와 더불어 설민석 선생님의 맛갈나는 설명이 더욱 기대가 된다.

 

 

MBC 홈페이지에서 예고와 다시보기를 제공중이다.

 

www.imbc.com/broad/tv/ent/crossline/preview/index.html

 

예고보기 | 선을 넘는 녀석들

 

www.imb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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